2010. 5. 22. 23:02ㆍ감동적인 글
며칠 전,
현관 앞 체리벚꽃 나무 아래에 달아놓은
새 모이통에 모이를 채워주러 갔다가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나무 아래,
내 딴에는`아이디어`라고 해 놓은 건데
어느날 그걸 본 남편이
"바람이 그랬나? 화분이 넘어졌네?" 해서 웃어버린
물봉숭아(impatience) 화분 옆에
물빛색의 작은 새 알(卵)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로빈(American Robin)의 알이었어요!!
로빈은 배에 구릿빛 털을 가진, 이곳에선 아주 흔한 새지만
열가지 이상의 예쁜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새랍니다.
특히 이른 아침에 부르는 노래는 얼마나 청아하고 은방울을 굴리는지
혹 삶의 한숨 짓다가도 배시시~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하는
재주가 있는 녀석이예요.
나무 밑에 새 알이 떨어져 있다는 건,
나뭇 가지 속에 부화 중인 새집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어요?
얼른 화단 밖으로 나와 찬찬히 살펴보니
아! 정말 나뭇가지 사이로 꽁꽁 숨겨 놓은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작은 집 한 채가 지어져 있는 게 보이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이 로빈이 아가를 낳는 시기였습니다.,
새들은 부화한 후 집이 너무 좁겠다 싶으면
부화 전에 미리 알을 굴려 밀어낸다는 사실 아시죠?
떨어져 있는 알도 그런 알이었을텐데도
저는 안타까움보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쿵쿵 뛰었어요.
그깐 새 집 하나 본 걸 가지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구요?
그걸 수 밖에요~
제겐 로빈과의 아픈 사연이 있으니까요.
오늘은 그 얘기를 꺼내볼까 해요.
이제부터 한동안, 이 체리벚꽃 나무 근처는
저는 물론 그 누구도 <접근금지구역>입니다.
다른 새들도 오지 못하게
새 모이통에 새밥도 채워 넣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럼 참회하는 마음으로
저와 로빈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께요.
.
.
.
그러니까 블러그를 쉬고 있던 작년 5월,
꼭 이맘 때 였네요.
2009년 5월 14일
2주간 한국에 다녀오는 동안
저희 집 현관문에 걸어놓은 화환(Wreath) 위에다
"포로롱 푝푝~~ 포로롱 푝푝~!!!"
아침이면 가장 일찍 예쁘게 노래하는 ,
로빈(Robin)이 예쁜 둥지를 지어 놓았습니다.
부드러운 마른 갈대잎과 진흙을 개어 지은 이 작은 城은
엄마 로빈이 아가를 낳기 위한 산실로만 사용하는 곳이고
아빠는 가까운 어딘가에 더 큰 둥지에서 살며
아내가 아기들을 데리고 올 날을 기다린다고 해요.
이것 좀 보셔요~!
손도 없이 부리로만
어쩜 이리 정교하게 꼬고 돌려 엮었을까요.
이 보드랍고 포근한 둥지 안에
믿겨지지 않을만큼
예쁘고 앙징맞은
로빈!
이름만큼이나 이쁜
제 손톱만한 파란 색 로빈 알이
4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 새가 둥지를 지었으니
문을 열지 마시오! "
.
.
남편은 메모를 써서 붙여놓고...
그 즈음 우리 집 현관은
신주단지를 모셔 둔
우리집에서 가장 귀한 곳이었어요.
제가 만든 화환이지만
너무 크게 만들어져
써~억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크게 만들어진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 그 위에 지어졌으니
이제 그 어떤 예쁜 화환보다
자랑스러운 화환이 되었습니다.
2009년 5월 14일 오후
로빈의 부화 기간은 2주라는데
언제 아가가 태어날지...
딸 아이의 졸업식이 있어
사흘간 집을 비워야 하는데
그 사이 아가가 태어나면 어쩌지?
온통 신경이 거기에만 쓰이는 거예요.
2009년 5월 18일 오전
사흘만에 집에 돌아와
화단의 나무 밑으로 달려가 숨어 바라보니
본래 로빈은 사람들 곁에 둥지 짓는 것을
다른 새들보다 덜 무서워한다는데
엄마 로빈은 그래도 경계하며 저를 빤히 바라봅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 오는 듯 하면
둥지에서 날아 나뭇가지 같은 데에 앉아
" 삑삑삑삑~~ 삐익 삐익 "
그때 만큼은 송곳 같은 소리로 정신없이 울어댑니다.
새 박사인 이웃집 패트릭 아저씨 말에 의하면 그건
" 그 쪽이 아니예요! 이쪽이라구요~!
여기 봐요! 여기!
제발 내 아가들 쪽으로는 가지 마요.
차라리 날 잡아 가요!!!"
하며 유인하려는 거래요.
대부분의 동물들의 암컷이
숫컷보다 더 예쁘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래요.
자식을 낳고 지키기 위해서
어미가 눈에 잘 띄지 않으려는...
세상에~!
사람 어미가 새 어미보다
특별히 나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9년 5월 18일 오전 9시경
나무 밑에 숨어서 바라보고 있는 저를
빤히 바라보던 엄마 로빈이
경계를 풀더니 고개를 숙이고
부리로 톡톡 무언가를 쪼아대기 시작했어요.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합니다.
이 순간이 바로 `줄탁동시`의 순간은 아닌 걸까?
아가 새는 세상 밖으로 나오려 알 속에서 바스락 거리고
엄마 새는 밖에서 쪼아 도와주는
그 절묘한 순간말입니다.
!!!!!
한시간 반쯤 뒤
엄마 로빈이 잠시 둥지를 비운 사이
얼른 들여다 보니
정말이었어요 ~!
거기!
두 마리의 아가가 태어나 있었습니다.
로빈은 아가가 태어나면
알 껍질을 깨끗하게 물어다 버려
둥지를 최대한 폭신하고 부드럽게 해준다는데
부서진 알껍질 하나 없는 폭신한 요람에서
두 아기가 서로 포개고 체온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2009년 5월 19일 오전, 10시경
어제 태어난 아가들은
요람에 얼굴을 묻고 정신없이 자고 있고
세번째 알에도 금이 가고 있었어요.
새들의 부화성공률은 40%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모두 잘 태어날 수 있을런지
가슴이 졸였습니다.
다음날인 2009년 5월 20일 오후
다행히도 네마리 모두 무사히 알에서 깨어나 있었습니다.
얏호~!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어우렁 더우렁 포개어 서로의 체온을 뎁혀가며
곤한 잠에 빠져있는 어린 것들이 얼마나 이쁘던지요.
저희 집 현관에 경사가 난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옛날 우리네 풍속처럼
숯도 달고 크고 빨간 고추도 단 금줄을
현관에 내 걸고 싶었답니다.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운 것을 보면
눈물이 막 나잖아요!
막 태어난 아가 로빈들~!
녀석들에게 이 세상이
아름답고 좋은 곳이 되길 눈물 찔끔거리며
삼신할미처럼 빌기도 했었구요
2009년 5월 21일 오전 10시경
일어나면 가장 먼저 달려가보고 싶지만
어린 것들의 아침 잠을 깨우게 될까봐
기다리고 기다렸다
해가 두둥실 뜬 다음에야 살곰살곰 다가가 봅니다.
세상에~!
세상에~!
어서 먹고 빨리 크겠다고
하루만에 부리가 저렇게나 자랐더라구요.
조물주의 손이 아니고서야
저런 일이 어찌 그저 우연히 되는 일이라 하겠는지요.
로빈은 다른 새와는 달리
벌레나 지렁이등을 먹는데 엄마 로빈은
새끼들 먹일 지렁이나 벌레들을 찾으려고
저희 집 화단을 온통 들쑤시고 다닙니다.
어서 비가 왔으면 했습니다.
엄마 로빈이 지렁이들을 많이 찾을 수 있게요.
첫 부화된 지 나흘째 되던 날,
며칠 전 로빈의 알을 발견했던
화단의 바로 이 체리벚꽃 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숨어서 보고 있는데
앗~!
둥지 위로
솜털 보송한 아가의 머리가 쑥 솟아 오르더니
쩍~~ 벌린 아가의 노란 부리가 보여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었습니다.
엄마 로빈은 먹이를 몇번에 걸쳐
잘라서 골고루 나누어 먹이는 것 같았어요.
숨 죽이고 있는 제 귀에
화르르~ 화르르~
몸에서 살꽃 피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물어다 먹이고, 물어다 먹이고....
새끼 하나에 하루 평균
30~40번의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는 엄마 로빈.
네마리니 하루 120~160번을 저렇게 다녀야할텐데
얼마나 고단할까요.
" 아가~!
새끼들만 먹이느라 못 먹지 말고
너도 잘 먹어야 한다."
친정 엄마가 딸에게 드는 마음이었어요.
그런 엄마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랄 아기 로빈들!
.
녀석들이 이렇게 저희집 현관에 머무는 동안
저는 매일 매일이 꿈을 꾸듯 행복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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